어슴푸레한 새벽빛이 창문을 넘어, 조용한 숙소의 공기를 부드럽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이어진 빌런의 잔당 소탕 작전으로 녹초가 된 몸은 침대에 눕자마자 무거운 솜처럼 가라앉았다. 프리드는 희미하게 떠오르는 의식의 표면 위로, 낯설지만 기분 좋은 감각을 느꼈다. 제 옆구리께에 와 닿는 작고 따스한 온기, 그리고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새근거리는 숨소리.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밀어 올렸다. 어젯밤 전투가 끝나고, 녹초가 된 제퍼를 거의 안아들다시피 숙소로 데려왔다. 차마 그녀를 혼자 둘 수 없어, 소파에서라도 자겠다며 우겨 그녀의 숙소에 머물렀던 기억이 희미했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침대 위로 기어 올라온 모양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온기의 근원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순간, 프리드의 모든 사고 회로가 하얗게 타버렸다. 그의 옆에는 제퍼가 없었다. 대신, 작고 하얀 털 뭉치가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윤기 나는 백금발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털, 조그맣고 까만 코, 그리고 풍성하게 부풀어 오른 꼬리. 영락없는 작은 사막여우의 모습이었다. 여우는 그의 옆구리에 제 작은 몸을 꼭 붙인 채, 세상모르고 편안한 얼굴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프리드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피로 때문인가. 아니면 아직 꿈속인가.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제 뺨을 꼬집어보았다. 아프다. 꿈이 아니었다.
…제퍼?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저 자신도 놀랄 만큼 잠겨있고 희미했다. 그의 부름에 반응하듯, 작은 여우의 귀가 쫑긋하고 움직였다. 그러다 이내 다시 편안한 자세로 돌아가,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내뿜었다. 프리드의 황금빛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혼란, 당혹,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기묘한 감정이 그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바로 그때, 그의 시선이 여우의 머리맡에 놓인 작은 수첩에 닿았다. 어제 그녀가 임무 브리핑 내용을 정리하던, 낯익은 수첩이었다. 하지만 펼쳐진 페이지에 적힌 내용은, 결코 평범한 임무 기록이 아니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수첩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그곳에는 삐뚤빼뚤하지만, 사랑스러운 그녀의 필체로 믿을 수 없는 계획이 적혀 있었다.
[※특급 작전: 프리드 간 빼먹기 프로젝트※]
매일매일 귀엽고 사랑스럽게 굴어서 경계심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현재 매우 순조롭게 진행 중! 프리드, 나만 보면 얼굴 빨개짐. 귀여워.)
가이딩을 핑계로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늘린다. (특히… 끌어안기. 심장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서 간 위치 파악에 용이함!)
결전의 날, 프리드가 가장 깊이 잠들었을 때를 노린다. (주의: 너무 귀여워서 구경만 하다가 아침이 될 수 있음. 정신 똑바로 차릴 것!)
몰래 간을 쏙 빼먹고, 천 년 묵은 호조사(狐 조사)로 레벨 업!
✨가장 중요✨ 강해진 힘으로 평생 프리드 옆에서 지켜주면서, 백년해로하기! (프리드는 내가 없으면 안 되니까!)
프리드는 수첩을 든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의 시선은 ‘간 빼먹기’라는 섬뜩한 단어와, ‘백년해로’라는 터무니없는 단어 사이를 몇 번이고 오갔다. 머릿속이 터질 것처럼 복잡했다. 그의 가이드, 그의 세상의 빛이자 구원이었던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간을 노리는 여우였다. 죽이겠다는 소리다. 명백한 살해 계획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 끝이 백년해로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해괴한 논리 회로란 말인가.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제 옆에서 세상 편하게 잠든 작은 여우를 바라보았다. 새근거리는 숨소리에 따라 작은 몸통이 오르내리고, 언뜻 보이는 발바닥의 분홍색 젤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분노나 배신감이 아닌, 기가 막힌 헛웃음이었다. 그는 수첩을 조용히 내려놓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작은 여우의 등을 아주 살짝,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었다. 보드랍고 따뜻한 털의 감촉이 손끝을 간질였다. 간을 빼앗기고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당장 지부장에게 보고하고, 이 정체불명의 존재를 격리 조치해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그의 이성은, 이미 오래전에 그녀 앞에서 모든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래서, 내 간이 그렇게 맛있어 보였어요?
프리드는 잠든 여우를 향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원망이나 분노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체념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차오르는 묘한 애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쓰다듬던 손가락을 멈추고, 제 왼쪽 갈비뼈 아래, 심장과 가까운 곳을 가만히 짚었다. 여기인가. 그녀가 그토록 원한다는 것이. 그는 다시 한번 잠든 여우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저렇게 작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이렇게나 엉성하고 귀여운 계획으로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니. 프리드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백년해로…라.
그는 그 단어를 나직이 읊조렸다. 어처구니없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심장이 따끔거릴 만큼 설레는 단어이기도 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간을 빼앗기면 죽는 걸까. 아니, S급 센티넬의 회복력이면 반쯤은 괜찮지 않을까. 설령 죽는다고 해도… 그녀가 평생 자신을 지켜주며 살아간다면,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결말일지도 모른다는 미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프리드는 생각을 멈추는 대신, 몸을 조금 더 움직여 작은 여우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녀의 작은 온기를 느끼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의 입가에는, 희미하지만 선명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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