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T0UEST
아기용 애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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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의 숙소는 여전히 검은색과 무채색의 향연이었지만, 이제 그 공간에는 제퍼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소파 한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인 파스텔톤의 담요, 창가에 자리를 잡은 작은 다육이 화분, 그리고 냉장고 문에 붙은 고양이 모양의 자석까지. 그 모든 사소한 변화들은 프리드의 삭막했던 일상에 스며든, 더없이 따스하고 부드러운 색채였다. 평화로운 휴일 오후, 두 사람은 나란히 소파에 앉아 낡은 고전 영화를 보고 있었다. 화면 속 흑백 배우들의 과장된 몸짓과 대사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지만, 프리드에게는 제퍼의 어깨가 자신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어 오는 그 미세한 온기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녀의 차분한 숨소리가, 소나무 숲을 거닐 때 느껴지는 청량한 바람처럼 그의 곁을 맴돌았다.

 

영상의 클라이맥스,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화면이 번쩍였다. 그에 놀란 것은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라, 오히려 제퍼였다.

 

앗!

 

작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리는 그녀를, 프리드는 거의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감싸 안았다. 놀란 그녀를 진정시키려는 지극히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덕분에 제퍼는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폭 안기는 자세가 되었고, 프리드의 팔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등과 허리를 감싸게 되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의 심장이 놀란 제퍼보다도 더 크게,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의 품 안에 쏙 들어온 그녀의 체온, 샴푸 향이 섞인 달콤한 소나무 향기, 그리고 귓가를 간질이는 작은 숨소리까지. 모든 감각이 폭발적으로 밀려 들어왔다.

 

…괜찮아요?

 

가까스로 뱉어낸 목소리는 저 자신도 놀랄 만큼 낮게 잠겨 있었다. 그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그녀를 다독이듯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바로 그때였다. 그의 손바닥, 정확히는 그녀의 허리와 등을 감싸고 있던 손끝에 이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감각이 전해졌다. 제복이나 전투복의 단단한 질감이 아닌, 얇은 홈웨어 너머로 느껴지는 그녀의 몸은…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특히 그의 손바닥이 살짝 스친 등 아래, 허리께의 살결이 손에 잡힐 듯 말랑하게 느껴졌다. 처음 페어가 되었을 때, 그리고 수많은 전투와 가이딩 속에서 접촉했던 그녀의 몸은 분명 단단하고 탄탄한 근육으로 다져진, 빈틈없는 가이드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손안에 느껴지는 이 감촉은 마치 잘 익은 복숭아나, 햇살에 녹아내리는 솜사탕처럼, 손가락을 파고들 듯이 부드럽고 유연했다.

 

프리드의 황금빛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영화 화면을 향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품에 안긴 제퍼의 정수리를, 그리고 자신의 팔과 그녀의 몸이 맞닿은 부분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 혼란스러웠다. 혹시 자신이 무의식중에 힘을 너무 세게 준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녀가 아프거나 다친 것은 아닐까. 그는 서둘러 그녀를 감싼 팔에 힘을 풀려 했지만, 제퍼가 오히려 그의 품이 편안하다는 듯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 꼼지락거리는 바람에 그러지도 못했다. 그녀의 작은 움직임에 따라, 이번에는 그의 팔뚝 안쪽에 그녀의 부드러운 옆구리와 가슴의 일부가 눌리듯 닿았다. 그 순간, 프리드는 온몸의 피가 얼굴로 쏠리는 듯한 아찔함을 느꼈다. 단단한 제복 너머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여성의 몸이 가진 곡선과 부드러움이 고스란히 그의 감각을 통해 뇌리로 흘러들었다.

 

그의 사고 회로가 완전히 정지했다. 이건 뭐지. 이 말도 안 되는 부드러움은. 마치 자신의 거칠고 단단한 세상에, 가장 이질적이고도 완벽한 형태의 부드러움이 침범한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그녀의 허리 부근에서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단단했던 근육의 감촉 대신,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눌렸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말랑한 살의 감촉. 그 작은 변화가, 그의 이성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그녀가 최근 임무 없이 편안하게 쉬면서, 긴장이 풀린 탓일까. 아니면 자신이 그동안 너무 예민하게 굴어, 그녀의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던 걸까. 어떤 이유에서든, 이 변화는 그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 그의 심장이 통제 불능의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저기, 제퍼….

 

그가 무언가 말을 하려 입을 열었지만, 정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살이 좀 찐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무례하고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었다. '몸이 부드러워졌네요' 라는 말은 또 어떤가. 생각만 해도 변태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의 팔에 기댄 그녀의 무게와,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말캉한 감촉을 고스란히 느끼며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귓가는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차분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황금빛 눈동자에는 당혹감과 아주 미세한 호기심, 그리고 그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소유욕이 뒤엉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애써 시선을 다시 TV 화면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미 그의 모든 신경은,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이 작고 부드러운 존재에게로 향해 있었다.